언어의 굴레, AI 시대의 인간은 어디에 있는가?
AI가 학습한 모든 데이터가 결국 인간이 엮어 놓은 ‘언어의 사슬’ 속에서 탄생했기 때문이다.
인간의 사고가 언어라는 구조적 굴레 안에 갇혀 있다면, 언어를 학습하고 확률적으로 추론하며 에이전트로 활동하는 거대 언어 모델(LLM) 기반 AI의 영향력은 필연적으로 확장될 것이다. 우리는 때로 AI가 뻔뻔하게 거짓말을 하거나 터무니없는 답을 내놓는다며 비웃는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인간 역시 매일같이 정보를 왜곡하고, 주입하고, 편향된 논리로 자신의 생각을 타인에게 관철하려 애쓰는 존재임을 자각해야 한다. AI의 의사표현 방식이 인간과 근본적으로 다르지 않은 이유는 명확하다. AI가 학습한 모든 데이터가 결국 인간이 엮어 놓은 ‘언어의 사슬’ 속에서 탄생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흔히 인간의 창의성과 직관이 AI의 논리를 앞설 것이라 믿고 싶어 하지만, 예술, 법률, 학술 등 인간 지성의 최전선이라 여겨졌던 영역들은 이미 데이터의 바다를 학습한 AI에 의해 재정의되고 있으며 인간의 일자리까지 잠식하고 있다. 인간 고유의 영역이라 굳게 믿었던 사고의 패턴들조차 AI는 너무나 정교하게 모방한다. 심지어 인간이 미처 인지하지 못한 데이터 간의 숨겨진 상관관계를 찾아내며 우리를 추월하는 모습은 이제 뉴스를 통해 일상이 된 풍경이다.
이러한 질주가 가속화될수록, 인류는 AI의 속도를 늦추고 통제해야 한다는 당위성을 놓고 격렬하게 다투게 될 것이다. 특히 삶의 중대한 의사결정권만큼은 결코 기계에 넘겨줄 수 없다는 방어 기제가 강하게 작동하리라 본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인간의 '불장난'은 언제나 가장 은밀하고 편리한 곳에서 잉태된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우리는 더 효율적인 의사결정과 더 나은 분석을 위해 스스로 AI에게 더 많은 주도권을 내어줌으로써, 아이러니하게도 스스로 파멸의 속도를 높이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결국 우리가 우려하는 영화 속 비극적 장면이 현실이 되지 않기를 바라지만, 이를 장담하기는 어렵다. 우리가 가진 모든 사고의 기저가 언어라는 한계에 고착되어 있는 한, 그 언어를 가장 완벽하게 통계화하고 구사하는 AI에게 삶의 주도권을 점차 잠식당하는 흐름은 이제 거스를 수 없는 거대한 숙명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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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의 목적
여행은 인간의 근원적인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한 행위다.
여행은 인간의 근원적인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한 행위다. 식욕, 성욕, 수면욕, 이 세 가지 본능의 충돌과 하모니 속에서 여행의 계획은 시작된다. 타협과 절충, 포기와 약간의 굴욕을 거치며 여행은 비로소 완성될 형태로 갖춰진다. 사람들은 근사한 호텔을 찾아 구글을 뒤지고, 후기들을 탐독하며, 맛집 리스트를 만들고, 지도를 그리며 종착지에서의 아름다운 로맨스를 꿈꾼다. 그렇게 다들 비슷한 욕망의 모양으로 여행을 준비한다. 그러나 그 욕망의 틈새에 결핍을 그려넣을 때 여행은 오히려 더 다채로워진다. 동기의 조각들을 여기저기서 끌어모으는 동안 여행은 스스로 의미를 확대하고 재생산한다. 늙은 부모님을 모신 여행객, 어린아이의 손을 잡은 엄마, 친한 친구들과의 단체여행, 그리고 전혀 모르는 커플들과의 우연한 동행까지, 각자의 이유와 사정이 얽히며 여행은 하나의 거대한 서사처럼 움직인다. 그리고 결국 우리가 그 속에서 발견하게 되는 것들은 놀라울 만큼 단순한 교훈들이다. 다들에게 무엇이였을까. 이번 여행을 통해 나는 그 단순함을 하나 깨달았다. 자신을 버릴 수 있는 곳은, 결코 일상의 공간이 아니었다는 것. 그러다 가끔 예상치 못한 곳에서 만나게 되었던 미슐랭 맛집들. 여행의 동력이 되었다.
태국에서 가장 유명하다는 미슐랭 셰프 할머니의 식당을 찾아갔던 날, 하필 그날이 장날이었다. 문은 닫혀 있었다. 게살 볶음밥을 꼭 먹어보고 싶었지만, 할머니는 다음에 내가 다시 오더라도 변함없이 그 자리에서 요리하고 계실 것이다. 그래, 마음먹은 대로 되지 않는 것이 여행이었다. 길을 걷다 우연히 마주친 또 다른 미슐랭 식당들도 있었지만, 많이 먹을 수는 없었다. 시간도, 내 위장도 여유가 없었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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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장은 욕망의 창고다'
우연이라 불리는 것, 그것은 어쩌면 운명의 또 다른 이름이 아닐까.
'심장은 욕망의 창고다'
넷플릭스 구독의 본전을 뽑았다.매년 마음속으로만 ‘다시 봐야지, 다시 봐야지’ 중얼거리며 미뤄두었던 그 영화.어느 날, 전혀 예상치 못한 순간이 계기가 되어 다시 보게 되었다. 나는 이틀에 걸쳐, 천천히 주인공의 시선을 따라가며 감상했다.
우연이라 불리는 것, 그것은 어쩌면 운명의 또 다른 이름이 아닐까.
더 이상 펼쳐보지 않을 책들이 집 안 구석을 차지하고 있는 것이 불편해져 책들을 박스에 넣어 옥상 계단 옆에 쌓아두고 있었다.어느 날 박스의 일부분이 비에 젖었고, 책들을 정리하는 도중 상자 속 곰팡이가 핀 책들 사이에서 헤로도토스의 ’역사‘와 마주쳤다.(알마시 백작 역을 맡은 랄프 파인즈가 영화속 항시 휴대하고 다녔던 책이 바로 이책이며 이 책속에 껴있는 메모 사진 그림 등등을 매개로 영화의 줄거리가 전개된다)그리고 갑자기 그 책을 보는 순간, 영화 잉글리쉬 페이션트가 떠올랐다.버려질 책을 위한 작은 고사를 치르듯, 나는 영화를 마침내 다시 보게 된 것이다.
예전 나는 이 영화에서 커다란 감동을 받았을 것이다.그렇기에 매년 다시 보려 했지만, 그러지 못한 채 세월이 흘렀다. 96년도 작품이라니 나는 괘 오랬동안 마음속에 묵혀놨었나보다. 머릿속에는 소설의 줄거리만 아주 희미하게 남아 있었고, 장면의 세부는 안개처럼 흐리다. 이틀 동안 여러번 끊어서 다시 마주했다. 결국 마지막 장면에서 나는 심장을 조여 오는 깊은 슬픔을 느꼈다.
아카데미 9개 부문 수상이라는 기록이 더 이상 숫자로만 보이지 않았고, 이제는 이와 같은 작품이 제작되고 상영되는 일은 좀처럼 일어나지 않겠다는 생각이 동시에 들었다.
언제 다시 이 영화를 또 보게 될지는 알 수 없다.
대신 도서관에 달려가 원작을 빌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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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기행 / 요한 볼프강 폰 괴테
괴테는 삼십세 후반(정확히 37세), 이탈리아 로마로 야반도주하듯 여행을 떠났다.
이탈리아 기행 / 요한 볼프강 폰 괴테
바이마르 공국의 재상으로 근무 중이었던 괴테는 삼십세 후반(정확히 37세), 이탈리아 로마로 야반도주하듯 여행을 떠났다. 내가 이탈리아, 유럽 르네상스에 관심을 줄곧 가졌었고 이에 관련한 서적과 역사서를 읽었었다. 이것이 토대가 되어 이탈리아 여행을 한 것이 괴테의 나이보다 10살이 더 많은 나이였다것을 ‘이탈리아 기행’ 1권을 읽으면서 그리고 관련한 정보를 구글링을 통해서 알게 되었다. 구글어스를 이용해 그가 지나쳤던 도시와 호수를 검색해보니 이백년도 전이라지먼 그때와 별반 다르지 않겠다란 생각이 든다. 시간이 멈춘듯 그가 방문한 이탈리아 북부의 도시들은 그시대 그대로 박제된 듯 보였다.
10대 소년 시절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이란 책을 읽고자 시도를 했었던 기억은 난다. 괴테가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쓰게 된 동기도 구글링을 통해 또한 알게 되었다. 이제서야 갑자기라고 하기 그렇지만, 읽고 싶어졌다. 하지만 장담은 못 하겠다. 기행에서 읽었던 그의 문장의 속도에 내 자신을 맞출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파우스트’란 책은 읽어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그러고 보니 고전 읽기를 중단한 지도 꽤나 오래된 것 같다. 여행을 통해 고독해졌다는 그는 1786년 9월 3일 칼스바트를 몰래 빠져나와 11월 1일 로마에 도착했다. 얼마나 가보고 싶었는지. 여러 도시들을 빠르게 지나쳤다는 그는 심지어 피렌체에는 3시간밖에 머물지 않았다고 이 책에서 기술한다.
세계의 수도 로마에 입성한 그의 흥분한 표정이 눈앞에 그려진다. 그리고 내가 로마 피우미치노 공항에 도착했을 때, 무빙워크 위에 가만히 있지 못하고 빨리 걸어 앞으로 나아갔던 순간과 테르미니역을 향해 가는 열차 안에서 바라보았던 그래피티 가득한 낡은 로마 근교의 건물들도 함께 떠올렸다.
시스티나 대성당에서 천지창조와 아테나 학당을, 베드로 대성당에서 피에타를 우피치 박물관에서 봄의 제전과 라오콘을, 여기 사진에는 없지만 비너스의 탄생 같은 서적에서 보아왔던 그 많은 건축물과 조각 회화 작품들을 떠밀리 듯 관람할 수밖에 없었던 순간들도 함께 떠올렸다. 그 당시 나의 여행은 로마로 들어가서 피렌체를 거쳐 베네치아에서 끝을 맺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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